한국기행 495회 미리보기
부엌기행
부엌 없는 집은 없다.
인류가 시작된 수천 년 전 과거부터 현재까지.
빈부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모든 집에 있는 부엌.
매일의 끼니를 준비하는 단순한 공간인 듯하지만
오랜 생활의 지혜 저장고이자
다양한 삶의 방식과 형태를 담아내는
부엌을 찾아가는 기행.
철마다 자연을 들이고 저장하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부엌부터 오랜 고택에 남아있는
지혜로운 공간으로서의 부엌까지.
부엌의 공간을 확장하여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를 담는 부엌을 만나러 떠난다.
1부. [불편해도 괜찮아]
우뚝우뚝 솟은 기암괴석들이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는
천관산의 천년 고찰을 찾아가는 길.
가파른 경사와 평탄치 않은 길에
어느새 웃음기는 사라지고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만이 가득하다
“요리를 하는 것도 다 수행이지.
음양의 조화를 알게되잖아 ”
마침내 도착한 곳은
남해의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탑산사.
간장과 들깨가루로 맛을 낸 도성 스님표 절 떡볶이와
비 내리는 암자의 고즈넉한 풍경은
고된 산행 끝에만 얻을 수 있는 선물.
편리한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스님의 작고 불편한 공양간은
자연을 그대로를 들인 세상 가장 너른 부엌이다.
-
한껏 쪼그려 앉아 모종 심기에 여념이 없는 아내.
삽질 세 번에 ‘힘들다’ 소리를 연발하는 남편.
철없는 베짱이 소년처럼
기묘한 악기 연주에만 빠져있는 남편에게
울화가 치밀기는커녕 장단 맞춰
노래 흥얼거리는 아내가 사는 이곳은 산적소굴이다.
“늙지 않는 영원한 소년.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는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예뻐요.”
작은 의자, 삐걱거리는 나무 문, 오래된 황토 아궁이.
65년 환갑을 훌쩍 넘은 불편한 옛 부엌은
봄 향기 물씬 풍기는 부추 전과
노릇노릇 구워진 고등어에
한껏 정감어린 맛과 운치를 더한다.
언제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곳은
행복으로 채워진 그들만의 작은 세상.
2부. [부엌의 탄생]
모래가 많아 ‘사도’라고도 불리는
인천 옹진군의 ‘사승봉도’에
패기 넘치는 청년탐험가들이 출격했다.
‘고래만한 물고기 잡아올게요!’라며
호기롭게 식재료 구하기에 나선 청년들.
그러나 현실은 모래 잔뜩 머금은 조개 뿐.
한 끼 해결을 위한 야생의 부엌을 꾸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불을 피우기 시작하는 삼인방.
변변찮은 도구와 어설픈 지식이 설상가상 더해져
불씨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란 없다.
한마음으로 힘을 보태
마지막 힘을 다 짜내는 청년들은
과연 불 피우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
물 맑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경기도 여주.
자연을 찾아와 터전을 잡은 만큼
완벽한 친환경 부엌은 선택 아닌 필수!
손으로 찍어낸 흙벽돌과 황토에
볏짚을 섞어 만든 황토로
불편함까지 해결해 지은 입식 아궁이 삼총사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최고의 부엌.
전통 아궁이에 서양식 조리가 가능한 화덕과
훈제요리를 할 수 있는 훈연실까지.
이제 맛있게 요리할 일만 남은
부엌의 탄생을 지켜보자.
3부. [냉장고야 미안해]
아내가 부르면 어디든 달려가고
아내의 부탁은 언제나 일 순위.
그러나 항상 2% 부족한 완성도에 오늘도
남편이 만든 도마는 아내 손에서 갈 곳을 잃었다.
“두더지 군이 더덕 다 먹은 거 아냐?”
“하나는 남겨 놨겠지.
근데 두더지 양식을 우리가 먹는 거 일수도 있어.”
냉장고를 가득 채워놓지 않고도
날마다 다르게 올라오는 집 주변 신선한 자연의
재료들로 매일 새로운 천국의 맛을 차려내는 아내.
방금 따온 찔레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호밀빵에
남편이 준비한 향긋한 박하차를
마시는 햇살 가득한 오후.
자연 그대로를 식탁 위에 차리는 부부의 부엌에서
냉장고는 오늘도 찬밥 신세다.
-
평범한 부엌 옆 조그마한 비밀의 문을 열고
통로를 지나면 나타나는 신비한 공간.
한 여름에도 으스스하게 서늘하다는 동굴은
아내가 직접 담근 매실 진액도 저장하고
와인도 저장하는 천연냉장고.
“비닐하우스에 일하면 한겨울에도 땀이 나는데
일 마치고 여기 들어오면 여기가 최고의 피서지예요.”
전직 일식 요리사인 남편이 오랜만에
솜씨 발휘한다는 소식에 주변 이웃들은
한달음에 달려와 초밥 맛에 한 번,
동굴의 시원함에 두 번 매료되어 쉬이 떠나지 못한다.
4부. [백년의 시간 저장고]
경남 거창의 작은 마을 한적한 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오래된 작은 집 한 채.
호기심 어린 얼굴로 기웃거리면
낯선 이도 반겨주는 할머니가
아궁이 한 솥 가득 물 펄펄 끓여
커피 한 모금 정겹게 건넨다.
오래된 부엌에서 구수한 청국장 끓이면
옛 생각 난다며 며느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지만
정작 우리의 할머니는 불 때는
일 지겹다고 언제나 볼멘소리.
그래도 근 70년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한
낡은 부엌은이제나저제나 할머니가
들어오기만을 오늘도 기다린다.
-
쿵덕쿵덕 고추 빻는 정겨운 디딜방아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삼연재’ 고택.
5대째 이어지는 150년 고택은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탓일까. 휘몰아치는 비를 뚫고
시아버지는 허물어진 담장을 보수하느라
여념이 없다. 고택에 반해 시집 온
맏며느리 지은씨도 솜씨 좋게 집안 이곳저곳을
꾸미느라 오늘도 식사 준비는 시어머니 몫.
백 년의 지혜와 시간을 고스란히 저장하고 있는
삼연재 고택에서 새것과 옛것이 조화롭게
풍겨내는 남다른 부엌을 만난다.
5부. [부엌문 열리는 날]
주말을 맞아 부모님을 찾아 온 아들 내외.
간단하게 해서 먹자며 만들기 시작한 겉절이는
빈손으로 보내기 싫은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서인지
겨울 김장을 무색하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생계를 위해 두부를 만들어 파는데 정신없어
자식들에겐 항상 팔지 못하는 못난 모양의
두부만 먹여 마음 아팠다던 어머니.
오로지 자식만을 위한 네모 반듯
새하얀 두부를 만드는 오늘.
서러웠던 추억은 아궁이 가마솥에 만든
두부로 따뜻한 기억이 된다.
-
부엌은 하나 주인장은 스물일곱 명.
제철 싱싱한 식재료들을 다 함께 나누어
요리하는 공동 부엌은
농사짓는 이는 판로를 만나 좋고
먹는 이는 건강하고 좋은 재료를 만나 좋다.
열무가 파릇해진 4월의 어느 봄날.
활짝 문이 열린 거창의 공동부엌.
엉덩방아 찧어가며 밭에 나가 직접 열무 뽑기 부터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인 김치 완성까지.
왁자지껄 손을 보태 다 함께 요리하고
정을 나누는 공동부엌은
어느새 노동이 아니라 여성들의 놀이터가 된다.
방송일시 : 2019년 5월 20일(월) ~ 5월 24일(금)
기 획 : 김 민
촬 영 : 고민석
구 성 : 허수빈
연 출 : 남호우
(㈜ 프로덕션 미디어길)
[출처]eb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