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471화 미리보기
단풍에 취하다
절정을 맞이한 단풍은
봄꽃보다 화사하고 황홀하다.
오색단풍이 가을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싱숭생숭 마음 따라 절로 들썩이게 되는 엉덩이.
서둘러 짐을 싸고 훌쩍 길을 떠나면
단풍은 덤이요, 색색의 가을처럼 멋지게
물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울긋불긋 곱게 물든 골짜기 집집마다
단풍놀이는 한창이고
세월 따라 더욱더 깊어진 오지에선
인생 절정을 이룬 사람들이 아름답다.
1부. 아버지는 내원골 스님
‘지금이 가스통 메기 좋은 계절이에요’
오색찬란 단풍이 절정을 이룬 지리산 내원골.
바람에 사각대며 흔들리는 단풍잎 사이로
삐걱대는 지게를 지고 올라오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른둘의 청년 김단호 씨다.
거친 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짊어지고 오는 것은
다름 아닌 무게 40kg에 달하는 가스통!
대체 단호 씨는 어디로 누굴 만나러 가는 것일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서러웠어요’
경남 하동 매계마을 시골집에 사는 김단호 씨의
아버지는 지리산 내원골 자봉스님.
단호 씨는 어느 날 출가해 산으로
수행 떠나는 아버지를
15살에 따라나서12년의 긴 산속 생활을 했었다.
청년이 된 단호 씨가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선택하고 하산한 지는 5년째.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기만 했던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동안
서러운 기억도 많았다는 단호 씨가
오랜만에 스님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2부. 별에서 온 낭군님
가슴까지 길게 내려온 수염,
솜씨 좋게 상투를 틀어 올린 백발의 머리.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현대판 선비 우리 낭군님은
대체 어느 시간 어느 별에서 왔을까.
380년 된 고택을 해체해 경기도 여주에 터를 잡고
다시 하나하나 끼워 맞춰
지금의 한옥을 지었다는 문제봉 씨는
먹을 갈아 글을 쓰고 난을 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서예가 문제봉 씨와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30여 년 전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아내 김수자 씨.
그녀는 현대판 선비 낭군님과 함께하면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살고 있다.
벼농사 짓고 푸성귀 길러 자급자족하며
살아오는 동안 밥은 굶지 않았다.
다행히 책상에서 글만 읽을 줄 알았던 낭군님이
한옥 건축부터 농사일에 전통음식까지
못 하는 게 없었던 덕분이다.
그런데 유난히 바지런한 남편은
은근히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아내는 뒷바라지하느라 매일같이 종종걸음치기 일쑤.
모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끓이려
아궁이 불 앞에 선 아내는
매캐한 연기에 눈물 콧물 다 짜내는데
느긋하게 장작을 넣는 낭군은 희희낙락이다.
‘연기는 미운 사람한테 간다는데 왜 나한테 오지?’
‘미운가 보지 뭐’
티격태격 순두부를 만드는 부부가 사는 세상은
별천지만 같다.
3부. 그대에게 물들어
‘여보~ 사과 잔잔하게 썰어주세요’
‘여보 전기선 좀 꽂아주세요’ ‘여보~ 여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편을 부르는 아내.
애처가 연하 남편은 아내의 부름이
영 귀찮을 법도 하지만
오늘도 동분서주 걸음이 바쁘다.
경상북도 청도 산골 오지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정영자, 박병조 부부.
단풍잎과 다투기라도 하려는지
빨갛게 곱게 익은 사과는
어찌나 탐스러운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
오늘은 아삭아삭 사과가 새콤달콤 깍두기로
또 변신한단다.
가을 깊은 오지 숲속에 서로 닮아가며
같은 빛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부부는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둥둥 오늘도 즐거운 해먹을 탄다.
-
해발 700m.
덜컹덜컹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멀리 돌로 지어진 동화 속 성 같은 집이 나타난다.
집 주위를 두른 돌담에 생뚱맞게 자리 잡은
전자레인지는 아이디어 수납장.
신비롭고도 재밌는 숲속 왕국에는
대체 누가 사는 것일까?
때마침 문이 열리고 전투에 나서듯 군복차림의
박봉택, 강지혜 부부가 등장!
두 사람은 굴뚝을 만들기 위해 작업복인
군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알고 보니 한 폭 그림 같이 예쁜 집은
다름 아닌 화가 박봉택 씨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는데!
강원도 정선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부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4부. 싱숭생숭 단풍주의보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여성 산악인’
남난희 씨를 설명하는 첫 번째 수식어.
산을 사랑하는 그녀는 25년 전
경상남도 하동군에 위치한 지리산 자락으로 왔다.
오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옛집에서
남난희 씨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365일 변하지 않고 마르지 않는 신비한 우물!
어디 그뿐이랴 가을 햇살 가득한
툇마루에 앉아있노라면
뻥 뚫린 시야 끝 저 멀리 산등성이가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가방 하나 둘러메고 집을 조금만 나서면
평사리의 황금들판이 장관을 이루고
산행을 내려오면 지리산 사람들의 소
박한 장터가 휴식이 되어주는 곳으로
남난희 씨와 함께 떠나보자.
-
강원도의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남편의 공방 문짝을 내동댕이쳤다.
서울 생활을 접고 홍천으로 귀촌해
지금의 흙집을 직접 지었다는
임영택, 김혜정 부부는 겨울이 들이닥치기 전
문을 새로 다는 일이 당장에 마음 급하다.
집도 지었는데 고작 문짝 하나쯤이야.
자신만만했던 말과는 다르게 어딘가 어설픈 부부.
과연 오늘 안에 문짝 하나 제대로 달 수나 있을까.
옥신각신 문짝 수리하다가도 단풍잎 덖어
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눠 마시면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이 되는 부부는
가을빛 곱게 서로를 물들여간다.
5부. 단풍만 곱던가요
‘물고기들이 단풍놀이 갔나 봐’
딸만 다섯. 정선 산골짜기로 시집와
줄줄이 딸만 낳았다고
시집살이 호되게 했던 아내에게는 그래도
든든하게 감싸고 의지가 되어준 남편이 있었다.
단풍이 곱게 물든 백석봉 정상에서 1100m 높이를
곤두박질치는 멋들어진 백석폭포와
시원한 오대천이 흐르는 집에서 함께
머리 희끗희끗해진 김원대, 김정환 씨 부부.
심심풀이 물고기라도 잡을 겸 오늘도 어김없이
낚싯대 둘러메고 대문을 나섰건만
어쩐 일인지 감감무소식이다.
단체로 단풍놀이라도 떠난 것인지
좀처럼 입질 않는 물고기를
오늘은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서야 하는 것인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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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 태백산 자락 백천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띄엄띄엄 집들이 숨어있다 나타난다.
여섯 가구 달랑 남아있는 깊은 산골 큰 바우 집으로
다시 돌아온 김찬영 씨.
도시에 나갔다 고향으로 온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가을빛 곱게 물든 산골짜기 계곡에 앉아
물소리 바람 소리 듣는 요즘이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망태기 하나 어깨에 둘러메고
토종꿀을 채취하러 가는 길.
아슬아슬 바위 절벽에 자리 잡은 벌통을 향해
오르는데 태백산 깊은 숲속 청정 가을 속에
토종벌들은 얼마나 알차게 꿀을 저장해 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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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이와 흑단이 진돗개 두 마리에
오리, 닭, 꿀벌들과 가끔 찾아오는 멧돼지들까지.
동물농장이 따로 없는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김우주 씨의 집.
오리들 놀이터 집 앞 계곡은 울긋불긋
단풍 옷으로 갈아입은 숲에서
떨어진 오색찬란 낙엽들이 벌써 쌓이고,
베어놓은 들깨는 따끈한 가을 햇살에
어느새 바싹 말랐다.
어머니는 벌써부터 깨 털기에 바쁘지만,
우주 씨는 천둥이 흑단이 돌보느라 일을 뒷전.
깨알처럼 쏟아지는 어머니 잔소리에도 우주 씨는
어야둥둥 천둥이 흑단이만 챙기느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방송일시 : 2018년 11월 19일(월) ~ 11월 23일(금)
기 획 : 김 민
촬 영 : 고민석
구 성 : 허수빈
연 출 : 남호우
(㈜ 프로덕션 미디어길)
[출처]eb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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