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공감 306회 미리보기
우리 큰형
우리에게는 ‘나’ 보다 ‘우리’가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당연지사였고 서열 문화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너무도 약했던 우리’가 ‘나 홀로도
잘 살 수 있게 된 것’은 그 시절의 우리에게
<가공할만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전라남도 나주, 김공님(82세) 씨 댁에는 아직도
‘우리’가 또렷이 존재한다. 아들 3형제가 매주
주말이면, 나주시 문평면 어머님 댁으로 모이고
김장철에는 손자 세대까지 30여명이 모여서
무려 350포기, 김장행사를 치른다.
한 해 마지막 날이면 서로의 건강을 빌고,
새해 첫날에는 떠오르는 해도 함께 맞이한다.
대체, 무엇이 이 댁의 ‘우리’를 가능케 한 것일까?
5남매의 생(生)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
김공님 씨 댁을 찾아 그 댁의 ‘우리’를 만나본다.
▶ 어머니의 집이 아니라 ‘모두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김공님 씨가 사는 시골집은 예나 지금이나
3형제의 놀이터다. 주말이면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어머니 댁으로 모여들고, 어머니 댁에
가면 으레 그렇듯 이미 두세 가족이 와있다.
나주에 사는 장남 김경수(61) 씨는 주중에도
수시로 들르고, 둘째 아들 관수(55) 씨는
어머니가 벌려 놓은 농사일 마무리가 특기다.
집수리 담당은 셋째 아들 연수(52) 씨, 어머니의
사사로운 집안일은 두 딸이 살뜰하게 챙긴다.
주중엔 각자의 삶을 살아도 주말이면
이 댁의 시간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 모닥모닥 모여 살던 어렸을 때처럼,
엄마의 밥을 먹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며
이제 함께 늙어가는 서로의 인생을 다독인다.
▶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김 씨네 가족이 사는 법
광산김씨 종갓집 종손의 아내였던 김공님 씨는
서른여섯에 혼자가 됐다.
시어머니에 줄줄이 딸린 입이 다섯!
종갓집이라고 해도 가세가 기울 때여서
김공님 씨는 나락을 주워 주린 입을 달래고,
또다시 나락을 주워 전답을
23마지기(15,206㎡)까지 불려 놓았다.
유일한 위안은 지금도 어머니의 화장대에
놓여있는 남편과의 흑백사진이다.
그 한 장의 사진이 어머니의 눈물이었고,
어머니의 다짐이었으며,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기도 했을 것이다.
당시 15살이었던 장남 김경수 씨는 그때의
어머니를 또렷이 기억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위어가는 어머니의 어깨를 바라보며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했고,
이후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본인의 학업을
포기했을 정도로 장남으로서의 희생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덕분에 동생들은 잘 자랐다.
아버지 없는 설움도 없었다 하며, 모두
대학까지 나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사회적 성공도 이뤄냈다.그런데도 주말이면,
형제들은 제 집을 놔두고 어머니의 집으로
모여든다.그곳에 어머니가 계시고
큰형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 배추 심고 마늘 캐는 것도 즐거운 가족행사입니다
김공님 씨는 여든둘, 지팡이 걸음에 작은
체구지만 텃밭 걸음은 여전하다. 한 뼘의
땅이라도 깨를 심어 놓으면 1년 내내
요긴할 것이고 고추도 지어만 놓으면, 내 자손
입에 들어갈 것이니 자투리 땅도 어찌 그냥
둘 수 있으랴~ 며느리들이 힘들다며 200포기만
하자던 겨울 김장도 350포기는 족히
나올 정도로 배추 씨앗을 뿌려 놓었다.
그 날이 오면, 두 딸까지 5남매는 물론이고
그 자녀들까지 30여 명이 팔을 걷어붙인다.
큰형님 네는 간을 하고, 둘째는 비비고,
셋째는 담고. 역사가 기니 분업화 또한
철저하다. 마당에는 1번, 2번, 3번 숫자가
써진 김치 통이 줄지어 선다. 각 번호의
주인 또한 태어난 순서와 같다. 농사철에는
아들 3형제의 공동 작업이 필수다.
고추 심고 모내기 하고 마늘 캐고 참깨 심고...
고된 농사일도 3형제가 모이면,
즐거운 가족행사가 되어간다.
■ 방송일시 : 2019년 7월 7일(일) 저녁 8시 10분 KBS 1TV
■ 프로듀서 : 이연식
■ 연출 : 김세건
■ 작가 : 최정민
■ 제작사 : ㈜알파타우러스
■ 내레이션 : 탤런트 길용우
[출처]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