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635편 미리보기
저 너머에 그리움이 있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젖을 물고 잠들던 행복한 유년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지나왔을까?
떠올리면 꽁꽁 얼어붙은 마음 기슭에
방그레 꽃이 피고
행복이 들게 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밤 지새우며 기다렸던 아버지가 자식들을
재우며 들려주던 옛 노래의 부드러운 가락과
아버지가 잡아 오신 고기를 꾸덕꾸덕하게 말렸다가
아궁이에 불을 넣고
가마솥에 푹 끓여내는 어머니의 물곰탕.
겨울날 추운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그런 것들,
그리움은 그곳에 있다.
1부. 섬마을 차차차
2월 14일 (월) 밤 9시 30분
경상남도 통영항에서
1시간 이상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곳.
추도의 청년과 이웃 섬인 사량도의 아가씨가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
육지로 나가 전국을 돌며 살아왔는데
9년 전, 박성근 추정연 씨 부부는
늘 그리웠던 고향 섬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온 후로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랑꾼 남편과 그의 애정표현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아내는 온갖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섬의 가장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전통 방식의
대나무 통발을 만들어 고기를 낚으며 살아간다.
오늘도 ‘금메기’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겨울의
물메기와 문어, 도다리, 아귀가 연달아 올라오고,
부부의 밥상은 진수성찬이다.
2부. 훈훈해서, 오지
2월 15일 (화) 밤 9시 30분
바다 같은 호수, 파로호.
꽁꽁 얼어버린 호수 위를 오토바이로 달려
한참을 들어가면 4가구만이 살아가는
오지 중의 오지!
그곳에서 장복동 씨 가족을 만났다.
큰 가마솥에 삶아지던 어머니의 시래기 된장국
냄새, 타닥거리며 타는 장작불 냄새,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타며 놀던 아이들 냄새.
그런 것들이 그리워 장복동, 진숙자 씨 부부는
이 오지로 돌아왔다.
그 옛날 부모님의 삶의 모습 그대로 말려놓았던
나물, 흙 속에 묻어 저장해둔 감자로 음식을
차려 내고,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박박 긁으며 추억을 먹는다.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겨울 놀이터를 이제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만들며 오지의 겨울을 보낸다.
그러면 어느새 꽁꽁 얼었던 몸과 마음이
훈훈해져 온다.
3부. 나의 아버지처럼 살다
2월 16일 (수) 밤 9시 30분
전라남도 담양.
약초꾼이던 아버지를 따라서 온 산을 다니던
소년은 도시 곳곳을 누비다가 아버지의 산으로
돌아왔고 그 옛날 아버지처럼 약초꾼이 되었다.
이길호 씨의 눈 닿는 곳마다 귀하디귀한
뽕나무 상황버섯, 사람 몸집만 한 잔나비 걸상,
성인 팔뚝만 한 더덕이 몇 뿌리, 1m가 넘는
야생의 산도라지가
‘날 데려가소’ 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놀라울 일이다. 그런 남편이 박보검보다
멋지게 보인다는 아내, 이영미(61세) 씨는
산을 기듯이 오르락~ 미끄럼 타듯 내리락~
하면서도 늘 남편 곁을 지킨다.
이 겨울 남도 지역 보양식이라는 기러기 고기에
아버지의 산이 내어준 약초를 넣어 끓여내고,
산삼주를 곁들이며 이웃과 함께 나눠 먹으니
부부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섶다리를 다섯 번 건너야 닿을 정도로 깊었다는
충주호의 오지. 그 호숫가 고택으로 돌아온
서중석 씨는 늘 그리웠던 고향 집에서
어린 시절처럼 고기를 낚고, 화로에 고기를
구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4부. 여기, 그녀들이 웃는다
2월 17일 (목) 밤 9시 30분
통영의 추도.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처럼
멀고 먼 섬으로 와 섬사람이 되고, 바다 위에
뜬 달을 보며 살아가는 김해월 씨가 있다.
부산에서 살던 그녀는 추도에서 황무지를 일구고,
집을 짓고, 채우고, 가꾸며, 지금껏 살고 있는데.
집 뒤의 대나무 숲에서 웬만한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작업을 척척 해내는
그녀의 나이는 무려 87세~!
그녀의 건강 비결은 단연 이 섬, 추도란다.
오늘은 이 섬이 그리워서 귀촌한 이웃,
세 여인이 모였다. 빈 바가지에 호미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쑥을 캐러 들로 나가는 길에
행복이 넘친다.
섬이 내어준 대구와 미역, 톳, 방풍, 시금치로
추도 음식을 차려 내고,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온 섬에 번진다.
5부. 가난하지만 푸근했던
2월 18일 (금) 밤 9시 30분
강원도 정선.
눈 내리는 오지의 풍경을 따라가다가 외딴곳,
오래된 촌집에 닿았다. 그곳에 사는 유돈학 씨는
다래 넝쿨로 설피를 만들어 신고, 가죽나무로
주루막(가방)을 만들어 메고,
짚으로 둥우리(닭장에 달걀을 낳도록 놓는
바구니)를 만들어 걸고, 화로에 옥수숫대를
태워 불을 쓰는 등 자연으로 자급자족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콩 가수기(정선 사람들의 칼국수)와 감자로 만든
옹심이는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 주기에 충분하다.
그는 아픈 몸을 낫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생활을 시작한 것인데 살아갈수록
어릴 적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그 시절의 우리는 가난해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기획: 권오민
촬영: 김기철
구성: 이시은
연출: 박은영
((주) 프로덕션 미디어길)
방송일시: 2월 14일(월) 2월 15일 2월 16일
2월 17일 2월 18일(금) 밤 9시 30분
[출처]eb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