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591편 미리보기
꽃보다 중년
누군가 말했다.
“청춘은 늘 과거형이거나 미래형이다.”
청춘의 시기엔 청춘이 온 줄도 모르고
밥벌이에 부모 자식 노릇 하다 보면
어느덧 저만치 가고 없어 사무치는 게
청춘이라고.
중년이 되어 문득 돌아보니
나는 없던 나의 청춘, 나의 인생.
조금 늦었더라도 이제부터는
나답게,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주연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프다.
저무는 해, 지는 꽃이 아닌 가슴 쿵쿵 뛰는
늦깎이 청춘으로 살아가는
5, 60대 삶의 풍경을 만나 본다.
1부. 좋은 걸 어떡해
4월 12일 (월) 밤 9시 30분
옛집은 반들반들, 우리는 곱게곱게
1951년에 지어졌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칠순.
조훈 씨 부부는 70년 된 부여의 고택을 2년간
직접 수리한 끝에 살림집 겸 작은 찻집으로
꾸몄다. 오십이 되어갈 무렵,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인생 고민을 하던 차 인연처럼
옛집을 만난 것이다.
오늘은 마당에 하늘하늘 수선화 빛깔의 차양을
내거는 날. 평상엔 개나리색 장판도 깔고,
꽃밭에는 데모르후세카, 안개꽃 등도 심는다.
옛집에 어울리게 땅에 장독도 묻었다는데,
항아리를 깨뜨리는 바람에 플라스틱 김치통이 빼꼼.
도시에선 누려보지 못한 평화로운 풍경,
부부의 손길로 반들반들해지는 옛집에서
부부도 곱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덜컥, 편백숲으로 간 사나이
자칭 ‘촌놈’이라는 김수영 씨.
어린 시절 숲을 쏘다니기를 즐겼고,
한번은 톰 소여가 되겠다며 숲에
얼렁뚱땅 트리 하우스도 지었다.
도시에 나가 살던 때에도 항상 숲을 그리워했는데,
고향에 편백숲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에
덜컥 대출을 받아 숲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내일모레 오십이 되던 즈음부터
전북 완주의 편백숲 지기로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반신반의했던 아내 김선용 씨도, 이제는
손가락만 한 허브 새싹에도 가슴이 두근거린단다.
편백잎으로 편백 오일을 추출하고,
편백숲 아래 동화 같은 집도 짓고 사는 부부.
“그저 좋은 걸 어떡합니까. 지금 내 인생은
100점을 줘도 안 아깝죠.”란다.
2부. 대문 밖은 초록 바다
4월 13일 (화) 밤 9시 30분
보이나요? 곤리도 맨 꼭대기, 오두막집
“가슴이 떨려요. 집에 갈 생각에요.”
경남 통영에서 작은 도선을 타고 들어가는
아담한 섬, 곤리도.
권홍규, 김정희 씨 부부는 우연히 낚시차
들렀다가 섬 맨 꼭대기 오두막집에 반해
주말의 집으로 삼았다.
멀리 부산에서부터 직접 들고 왔다는
가마솥부터 닦고, 창 너머 자그마한 콩란에도
인사를 잊지 않는다.
햇부추와 두릅 따고, 자연산 돌미역도 건지는
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이 부부에게는 소.확.행.
홍규 씨는 귀띔한다.
“육십 평생 돈에만 매달려 살았는데,
이젠 욕심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 하며 살아야죠.”
바다에서 행복을 외치다
서울의 교통 체증에 지쳤었다는
김영진, 전채원 씨 부부.
대물 참돔을 잡고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충남 태안으로 귀어한 지 올해로 19년째다.
그 사이 낚싯배도 두 척이나 장만하고,
마흔여덟 살이 되던 해엔 늦둥이 딸까지 얻었다.
모자로 민머리 살짝 가리면 마음만은
50대라는 남편 영진 씨.
물 빠지면 모래펄에서 동죽을 잡고, 물 찰박이면
바다에서 우럭을 낚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
드넓은 바다에선 세레나데가 절로 흥얼흥얼.
나이 육십에 가장 행복한 사나이,
넓고 넓은 바닷가에 그가 산다.
3부. 나의 작은 힐링 숲
4월 14일 (수) 밤 9시 30분
당신도 쉬어가기를
강원도 영월의 설구산 자락에
힐링 숲을 만든 한 남자가 있다.
울울한 숲도 가꾸고, 숲 아래 손수 여섯 채의
황토집도 지은 김헌식 씨가 그 주인공.
나만을 위한 숲이 아니라 숲에 오는
모든 이들이 쉬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8년 전부터 우프를 시작해
다국적 우퍼들을 맞고 있다.
오늘은 호스트와 우퍼로 인연이 된,
러시아 유학생 알렉스가 찾아왔다.
아저씨! 부르며, 황토집 지붕에 올라 비료도
주고, 말썽꾸러기 새끼 산양들과 산책도 한다.
산에 도라지를 옮겨 심으며 흙투성이가 되어도
알렉스에게 이곳에서의 하루는 ‘쉼.’
세월로 만든, 바보의 숲
지리산 자락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는
김문금, 이환숙 씨 부부.
옛날에 황무지였던 땅이 30년 세월 무던히
가꾸다 보니 숲이 됐다.
농부의 우직한 성정을 닮은, 일명 ‘바보의 숲.’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녹음이
짙어 쉬어가기 좋고, 표고, 머위 등
먹을거리도 지천이다.
네 평 비닐하우스가 있던 터에는
멋진 나무집이 생기고,
아이들 우윳값을 벌기 위해 장에 내다 팔던
진달래꽃은 부부의 어여쁜 주전부리,
화전이 되는 지금.
중년 부부의 인생의 발자취이자, 희로애락이
담긴 ‘바보의 숲’을 함께 거닐어 보자.
4부. 그렇게 농부가 되다
4월 15일 (목) 밤 9시 30분
오십에 이룬 꿈, 라벤더 농부
결혼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잊고 지냈던
꿈을 나이 오십에 이뤘다는 이현숙 씨.
태어난 고향 집이자 서당으로도 쓰였다는
산청의 150년 된 고택 ‘학이재’에서
프랑스 유학 시절 감명 깊게 봤던
라벤더 농사를 짓고 있다.
얼결에 귀촌한 남편 이장호 씨는 서울행 버스의
매캐한 매연만 맡아도 도시가 그리웠는데
이제는 낯선 시골생활에 수긍 중이란다.
라벤더 가지를 치고, 그 나뭇가지로 불을 피워
한옥에 향을 입히고,
후둑후둑 비 오는 날엔 담금초도 만든다.
현숙 씨에게는 농부로 사는
지금이 뒤늦게 찾아온 나의 전성기!
숲은 어머니다! 명이에 반한 남자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었던 IT 업계에서
30년간 근무했다는 윤창효 씨.
‘숲은 어머니다’라는 말에 머리를 때려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고 거창으로 내려와 명이 농부가 됐다.
해발 700m 백두대간의 청정지대에서
한창 푸릇푸릇한 명이를 수확 중인 창효 씨.
반려동물, 반려인 있듯, 명이는 그의 반려작물.
샛초록 명이밭을 무대 삼아 노래도 부르고,
여린 새싹을 바라보며 눈물도 훔친다.
하위 1% 농부여도 좋다.
뒤늦게라도 ‘자연’이라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알게 됐으니…
5부. 산으로 간 형제들
4월 16일 (금) 밤 9시 30분
오! 나의 벗, 나의 위안! 공작산 오 형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주방용품업체 회장이었던
이현삼 씨. 더는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평생 일에 전념하며 살았다.
운 좋게도 사업은 승승장구했지만,
막심한 스트레스로 한번 걸린 동상이
전신으로 퍼지면서 쉴 곳이 필요했다.
우연히 홍천 공작산에서 쉬어가게 됐는데
그러기를 몇 해, 건강을 되찾았다.
이 일을 계기로 공작산 휴양림을 통째로 구입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형제들을 불러들였다.
두서없이 신소리를 잘하는 둘째 현학 씨,
셋째인 현삼 씨, 왕년에 말썽 좀 피웠으나
지금은 미소천사가 된 넷째 태현 씨,
성실하고 묵묵한 막내 덕삼 씨.
함께 장뇌삼 농사를 짓고, 죽염을 굽고,
한 식탁에서 복작복작 밥을 나누며,
밤이면 노천탕에 들어앉아 별을 보며 수다도 떤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어 보니 알겠단다.
부모며 친구고, 위안이며 행복은,
다름 아닌 가족, 형제란 것을
방송일 : 4월 12일(월) 4월 13일 4월 14일
4월 15일 4월 16일(금)
기획: 권오민
촬영: 김기철
구성: 장연수
연출: 김지영
((주) 프로덕션 미디어길)
[출처]ebs1